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|| [[파일:external/7826d65f018e7556b5ef335dc32e316c77d5f44cd8bae7abcd4505353c554d77.jpg|width=100%]] || ||▲ 고향인 [[아르한겔스크]]에 세워진 쿠즈네초프의 동상. || 탁월한 지휘관으로서, 그리고 능숙한 행정가로서 쿠즈네초프가 소련-러시아 해군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. [[소련 붕괴]] 후의 [[러시아 해군]]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. [[현대]] 해전이 [[미사일]] 위주의 [[시대]]로 간다는 것에는 깊은 이해가 없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[[1940년대]] 후반부터 [[견제]]받기 시작해 [[1950년대]] 중반에 [[실권]]에서 완전히 배제된 [[인물]]이라 큰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. 미사일 중심의 해전론이 대두된 것이 로켓의 유도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[[1950년대]] 말이었고, 소련이 손놓고 있던 것이 아니라 [[스틱스 대함 미사일]]을 개발해서 [[이집트군]]이 이를 사용, [[1967년]] 에일라트 함을 격침시켰음을 보면, 소련 해군도 미사일 중심 [[해전]]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. 그의 [[이름]]을 붙인 [[항공전함|항공순양함]] 함급인 [[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중항공순양함]]이 2척 건조되었다. 1번함인 어드미럴 쿠즈네초프함은 아직도 러시아 해군에서 [[현역]]으로 활동하고 있고, 제2번함인 바랴그함은 미완성 상태로 준공비용도 없고 완공하더라도 운용비가 나올 구멍이 없어서 [[우크라이나]]에서 방치되었다가 [[중국]]에서 해상 [[카지노]]를 만든다는 [[명분]]으로 팔려갔다가 [[중국 해군]]이 개조하여 [[001형 항공모함|랴오닝함]]이라는 함명으로 취역시켰다. 비슷한 사례로 [[대한민국 해군]]의 아버지인 [[손원일]] 제독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